국내 철강 내수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며 ‘철강 5000만t 시대’가 종말을 맞을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약 800만t에 달하는 철강 수요가 증발하면서, 산업 전반의 장기 침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철강 수요 급감과 전방 산업 부진, 공급 과잉의 악순환이 국내 철강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 철강시장, 구조적 침체의 그림자
지난 몇 년간 국내 철강 내수 시장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과거 '철강 5000만t 시대'를 구가하던 한국 철강 산업은 이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는 구조적인 위기로 평가된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내수 기준 5116만t을 기록했던 철강 수요는 2023년 기준 4332만t으로 급감했으며, 올해는 4297만t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이 같은 철강시장 위축은 자동차, 건설, 조선 등 전방산업의 부진과 맞물려 산업 전반의 동반 침체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건설 시장의 경우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주거와 인프라 건설 수요가 동시에 떨어지면서 철근, 형강 등 건자재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나아가 반도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도 무색할 정도로 산업 전반의 바닥 탈출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또한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대거 유입도 국내 철강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에도 출혈을 감수하며 수출을 이어가는 중국 철강 기업들은 한국 시장 내 교란 요인으로 작용, 국내 철강사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내수 회복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히면서 국내 철강 산업은 ‘L자형 장기 침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으며, 이는 단기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임을 시사하고 있다.
철강 수요 급감, 산업 시그널이 말하는 것
철강 수요의 급감은 단지 철강 생산업체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제조업 생태계가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등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필수 소재다. 이 소재의 소비가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산업의 생산과 투자가 줄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국내 철강 수요 구조를 살펴보면, 건설 분야가 약 40%, 제조업(조선·자동차·기계)이 약 45%, 유통이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건설 수요는 2021년 2107만t에서 2023년 1830만t으로 13% 이상 줄었으며, 올해는 1800만t선 붕괴까지 예측되고 있다. 이는 아파트 분양 감소, 민간 SOC 축소 등에서 비롯된 결과다.
제조업 수요 역시 조선·기계 분야는 주춤한 회복을, 자동차는 글로벌 경기 여파로 생산 감소를 반복하고 있다. 유통 부문은 전체 철강 시장 위축의 여파로 납품 단가와 마진율이 줄며 공급망 전체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방 수요 산업이 살아나지 않으면 철강 수요의 꾸준한 감소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철강 수요 축소는 생산 축소뿐 아니라 고용 감소, 지역 경기 침체, 산업 클러스터 붕괴 등으로 이어지며 지역경제와 중소 협력업체들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포항, 광양 등 철강 중심 지역은 청년 유출과 생활 기반 축소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돌파구 없는 철강 산업의 위기 속 공급 과잉
철강 수요 감소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공급 과잉 문제는 국내 철강업계에 또 다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수년간 생산 설비를 확충해 왔지만, 내수 수요 급감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P사의 광양 4 고로 등 대형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가동률은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유휴설비 증가와 고정비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며 철강사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한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ESG 경영 강화로 고부가가치 철강 중심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저가 위주의 중국산 철강재의 유입은 국내 업체의 제품 차별화 전략에 제동을 걸고 있다. 실제 2023년 한국 수입 철강재는 사상 최대인 2378만t을 기록했으며, 이 중 65% 이상이 중국산이다. 특히 열연, 냉연 제품에서 품질 저하 문제가 있음에도 가격만으로 승부하는 저가 물량 밀어내기 전략은 국내 업체의 시장 방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 요소들이 중복되며,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 없이 지속 가능성 확보가 어려운 지경이라는 점이다.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조차 일부 고로 제철소 폐쇄나 감산, 해외설비 매각 등 비상조치를 논의 중이며, 이는 단기간의 전략이 아닌 산업 재편을 전제로 한 중장기 대응이 필요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한 철강 관계자는 “철강업은 한번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수년 간 회복이 어렵다”며 “수요 성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낡은 공급 체제를 끌고 가려면 산업 기반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론 및 향후 전망
최근 수년 간 이어진 국내 철강 시장 침체와 수요 급감은 산업 전반의 경고음을 의미한다. 건설·제조 등 전방 산업의 부진과 글로벌 공급 과잉 속 경쟁 격화는 한국 철강업계에 있어 근본적인 구조 전환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방증한다.앞으로는 단기적 수요 회복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수익 구조 전환, 내수 및 수출 시장 다변화, 친환경 철강 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 산업 재편을 위한 과감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지금은 국내 철강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장기 침체에 빠질지 갈림길에 서 있는 시기다. 산업 전반과 정부, 그리고 기업 각자의 대책 마련이 실질적인 구조적 대응으로 이어져야 한다.

